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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 고창군 여행지 정보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여행지를 방문하시고

주변의 식당을 방문하여 맛체험 여행을 떠나보세요.


<정읍시 편>

동학혁명기념관

  • 백산(白山) 3월 봉기(蜂起), 전주집강소(全州執綱所), 삼례(參禮) 9월 봉기, 우금치전투(牛金峙戰鬪)외 유품자료가 40평 규모이며 전봉준이 사용하던 유일한 유품(遺品)으로 벼루, 붓, 패랭이, 갓, 신 등이 보존되고 있으며, 사료(史料)로 갑오실기(甲午實記), 전봉준 공초(全琫準供草), 용담유사(龍潭遺詞), 동경대전(東經大全),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 등 당시를 조감(鳥瞰)할 수 있는 사료를 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때의 사진, 병기, 도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은 186종(種)에 총 290점(点)이 보관되어 있으며 기념관에 사발통문(沙鉢通文) 등 11종 159점이 있고 전봉준 고택(全琫準故宅)에 장롱 등 75종 131점이 있다. 건물은 콘크리트 둥근 기둥에 연와 벽동, 벽체, 토기와(土瓦)와 박공지붕이고 전면 5칸, 측면 3간이다. 황토현전적지(黃土峴戰蹟址) 황토현전적지는 1894년(高宗 31년) 고부군수 조병갑(古阜郡守 趙秉甲)의 학정(虐政)에 대항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외치던 당시 전봉준 장군의 휘하 농민군이 5월 11일 관군과의 접전 첫 번째로 전라 감영군(監營軍)을 크게 물리쳐 대승(大勝)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8
  • 주차장 :
  • *규모 · 총면적: 168,501㎡ · 강당: 40평, 교육학습장, 전봉준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구민사: 사당 · 전봉준장군 동상: 높이 2.7m · 내삼문(보국문): 7평 · 외삼문(제세문): 14평 · 야영장(4,747평, 건평 207평, 강당 90평
    *소장품 유적지기념관 – 유물은 186종에 총 290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기념관에 사발통문 등 11종 159점이 있고 전봉준 고택에 장롱등 75종 131점이 있다.
    *이용시간 · 동절기: 9:00∼17:00 · 하절기: 9:00∼18: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
  • 전화번호 : 063-536-2310

정읍사공원

  • “정읍사”의 발원현장에 6만7천 여평의 규모로 공원을 조성하고 시의 상징인 백제의 여인상 망부상과 정읍사 사우 정읍사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망부상 망부상은 1986. 12월 2.5m 화강암으로 건립하였는데 약간 긴 저고리에 옷깃을 따라서 저고리 아래쪽까지 단이 있으며 머리는 양쪽으로 쪽을 짓고서 두 손을 마주잡은 서있는 모습이다. 반코트식에 아래까지 단이 있는 것은 고구려벽화에 흔히 나타나고 있는 고구려 복식이다. 학계에서는 백제시대 의복에 대해서 옛 문헌에 기록이 보이지 않는바 고구려 벽화에 나와 있는 복식을 연구하여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고구려 유민이 백제를 건국했기 때문이다. 정읍사 사우 정읍사 사우는 1994년 7월 규모는 11.5평,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건립하였으며 행상 나간 남편을 오직 사랑하나로 기다리고 기다리다 망부상이 되어버린 백제여인의 부덕을 기리는 제례를 올린다. 정읍사 노래비 지금의 정읍사는 우리의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이 개사되어 우리 고장 출신 KBS관현악 단장 김강섭선생의 작곡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수제천은 가장 오래된 곡으로 전통 음악 중 으뜸으로 연주되고 있다. 늦게나마 기다림의 정서가 적절한 백제노래 정읍사와 궁중가악곡을 가진 우리 정읍의 향토문화예술을 자랑하여 후손에 길이 전승키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1996. 12월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정읍사 공원지구 정읍사예술회관, 정읍사국악원, 시립도서관, 야외공연장, 체육 시설 등이 들어서 있어 향토색 짙은 수준 높은 지방문화를 창출하고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자원 정읍사 망부상, 정읍사사우, 정읍사노래비
  • 입장료 : 무료입장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시기3동 81-7
  • 전화번호 : 063-530-7413
  • 관광지 담당자 : 정읍시

백정기의사기념관

  • 백정기의사가 1934년 6월 5일 39세의 나이로 서거한지 62년 후인 1996부터 성역화사업이 시작되어 2004년 6월 5일 70주년을 맞아기념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총 부지면적은 6,6307평으로 기념관에는 백정기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의열사, 백정기의사의 유출 밑 활동상을 전시설명하는 구파기념관, 역사의 산교육장인 청의당 강당, 백정기의사의 민족의식과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고귀한 뜻을 새기기 위한 의열문, 백정기의사의 애국정신과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승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의외에도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숭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백정기의사를 형상화 한 동상, 어록비, 순국비,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본 기념관 입구부에는 음수대 및 파고라 등 관람객을 위한 휴식공간과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명실공히 성역화의 장으로서 준비가 마련되어 있다.
  • 소재지 :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605-4

전봉준장군고택

  • 1981년 11월 28일 사적 제293호로 지정 된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綠豆將軍)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5년(1854)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 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立道) 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 당시 전국의 농촌은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으로 농민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이 곳 고부현(古阜縣) 역시 군수(郡守)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萬石洑)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水稅)를 거두는 등,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하고 원성이 높았다. 이 때 선생은 고부현의 동학 접주(接主)로 분노에 찬 농민들과 동학교도의 조직을 이용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구호를 내세우고 동학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고종 31년(高宗 1894) 갑오 동학(甲午 東學) 혁명(革命) 당시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댁(古宅)은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군에서 1974년에 국비(國費)와 군비(郡費)로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웃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방(房)으로 보다는 살림살이 등 속을 넣어두는 도장으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웃방은 장지(障紙)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공간으로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天障)은 두 가지 다 연동(連動) 천장이다. 두 개의 방 앞으로는 퇴(退)마루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 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 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草家)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村老)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陽橋里 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갑오년(甲午年 1894) 1월에 봉기(蜂起)한 후 안핵사(按衍使) 이용태(李容泰)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補修)를 하면서 해체(解體)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上樑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高宗 15年 1878)” 세운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廢屋)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 입장료 : 무료입장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458-1
  • 전화번호 : 063-530-7790
  • 관광지 담당자 : 정읍시 문화관광과

황토현전적지

  • 전북 정읍시 덕천면(德川面) 하학리(下鶴里)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관군과 처음으로 싸워 대승을 거둔 자리. 사적 제295호. 해발고도는 70 m이며, 당시 태인(泰仁)과 고부(古阜)를 연결하는 요지였다. 1894년 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하여 봉기한 농민군은 고부를 점령하고, 1만에 가까운 군세로 백산(白山)에 집결하였다. 급보를 접한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은 영장(營將) 이광양(李光陽) 등에게 영병(領兵) 250명과 보부상대 수천명을 주어 농민군을 소탕하게 하였다. 농민군이 관군을 맞아 황토현 서쪽에 있는 도교산(道橋山)에 진을 치자, 관군은 황토현에서 대치하였다. 4월 6일 밤 농민군이 기습공격을 하여, 이광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병이 전사하였는데, 농민군은 이를 계기로 1개월만에 호남지방을 석권하였다. 이 일대에는(약 10만평)동학농민혁명기념탑을 비롯하여 전봉준장군의 동상과 사당, 유픔을 전시한 기념관, 기타 녹두광장과 주차장 시설들을 갖추고있다. 현재 진행중인 기념관 건립(2003년 완공)이 완공되면 많은 유품 및 시설들이 보강되여 문화유적지를 찾을 외래탐방객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를 재조명 하는 산교육장 역할을 충분히 할것이다.
  • 입장료 : 무료입장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 전화번호 : 063-530-7578
  • 관광지 담당자 : 전라북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김동수가옥

  • 이 가옥은 김동수씨의 육대조(六代祖)인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하산(蒼霞山)을 배경(背景)으로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上流)인 맑은 하천(河川)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세운 주택용(住宅用) 건물(建物)이다. 바깥행랑채의 소슬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다시 사랑채의 안 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左右 對稱)을 이루며, 좌우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特異)한 평면(平面)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祠堂)이 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部材)를 사용했는데 이는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지은 중류이상(中流以上)의 주택건물에 보이는 일반적 특징이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建立者)의 독창성(獨創性)을 엿보게 한다. 후세(後世)에 보수(補修)하거나 개조(改造)되지 않고 거의 원형(原形)대로 보존 되어 있으며 주택과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주위에는 여덟 채의 호지(護持: 노비의 집)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누대(累代)를 살아 오면서 재산을 누리고 살아온 이름 있는 터(基)로, 점을 쳐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목이 되는 풍수설(風水說)의 터이기도 하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니 좋은 집터라 하여 이익이 생겨지는(生利) 집이라 하여 집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곳이기도 하다.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터전에 동서(東西)로 65m, 남북(南北)이 73m의 장방형 담으로 둘려 있고 주 건물(主 建物)은 동서면(東西面)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개울을 건너가면 대문(大門) 앞에 큰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말라 버렸다. 문간채(門間棟)는 길게 설치되어 있으나, 쓰임에는 두 가지로(兩分)되어 있다. 대문(大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마구간(馬廐間)이 있고 좌측에 방, 마루, 또 방이 있고 거기에서 꺾이면서 북쪽에 있는 칸에 방과 부엌을 한 칸씩 두고, 이어 약간 간 격을 둔 뒤에 바깥 남자들이 쓰는 변소(外厠)를 세웠다. 이 하나의 담으로 둘러쳐 막은 곳(一廓)에 한 곳을 사잇벽(間墻)을 쌓고 동편에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동쪽 정원에 사랑채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고, 그 앞에 대문간채(大門間棟)에서 이어진 고간(庫間)이 일곱 칸이 계속 되다가 ㄱ자로 꺾이고 북쪽으로 가면서 부엌과 방 두 칸이 더 있다. 사랑채에는 정면으로 다섯 칸, 옆면으로 세 칸의 一자형(字形) 평면인데 높은 기둥에 세워 안에 들이고 그 앞뒤로 퇴간을 두었다. 방은 두 칸과 뒷방 한칸이며 부엌과 안창고(內庫)가 있는 외에는 전부가 마루로 된 시원한 량청(凉廳)이 되어 있다. 이 사랑채에선 전퇴(前退) 서단간(西端間)에 횃대처럼 한 가닥만 기둥 사이에 건너질러 난간처럼 꾸민 구조가 주목되고 있다. 난간의 발달과정 등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급하는 학문적인 자료가 거기에 있다. 중문간채(中門間棟)가 사랑채 뒷편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변소(厠間), 허간(虛間), 고간(庫間), 내외벽이 있는 두 칸의 중문(中門), 이어 헛간과 고간이 계속되다가 아홉간(間)채에서 꺾이어 북쪽으로 부엌과 방이 두 칸 이어진다.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안 마당에 ㄷ자형의 안채가 있다. 몸채의 가운데 여섯 칸이 대청(大廳)이며 세 칸이 두불작이이다. 그 좌우에 방이 각각 있고 이어 꺾인 날개부분에 부엌이 만들어져 있다. 안채의 서쪽에 별당(別堂)이 한 채 있어 역시 남향이다. 一자형인데 정면 다섯 칸, 옆면 칸반이 되는 규모이다. 역시 가운데에 대청(大廳)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으며 서쪽 끝에 부엌 한칸이 만들어져 있다. 별채의 남쪽에 부속건물이 하나 더 있고 안채의 동북쪽에 따로 이룬 가묘(家廟)가 있다. 특히 사랑채에는 팔각 지붕에 네모난 기둥인 방주(方柱)를 사용했으며 주위로는 잘 다듬은 화강암의 길게 다듬어 만든 돌인 장대석(長帶石)을 둘러 놓았다. 이 건물은 균형미가 넘쳐 있으며 처마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이루는 건축미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나타내 주고 있어 조선조(朝鮮朝) 사랑채 건물로서는 전국에서도 빼어난 건물이라 하겠다.
  • 입장료 : 무료입장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
  • 전화번호 : 063-530-7615
  • 관광지 담당자 : 정읍시 산외면사무소

내장산 국립공원

  •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內藏山)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지천을 물들이는 내장산은 찾는 이의 가슴에 진한 추억을 남기는 “호남의 금강”이다. 불 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내는 황홀경은 단풍비경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다. 해마다 단풍천지를 이루는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으로, 겨울에는 바위절벽의 멋진 비경과 아름다운 설경, 그리고 사계절 내내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내장산 국립공원은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 백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쳐간 입암산성 까지를 포괄하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처럼 비경의 연속이다. 내장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내장사(內藏山), 대웅전과 극락전 등 조선중기의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는 웅장하고도 고풍스런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백양사(白羊寺),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그 잎새들을 반짝거리는 굴거리 나무와 비자나무 노목들이 천 년을 넘나드는 불심으로 아름다운 숲을 이뤄 역사의 심오한 향기를 더해준다. 또한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하여 장군봉(696m), 서래봉(624m), 불출봉(619m), 연자봉(675m ),까치봉(717m) 등이 말발굽처럼 둘려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760종의 자생식물과 숲, 그리고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이 숨쉬고 있는 내장산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그리고 전남 장성군에 걸쳐있으며, 소백산맥에서 갈라진 노령산맥이 호남평야의 한 가운데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빚어낸 우리나라 최고의 가을산이다. 총면적이 76.032㎢ 에 달하며 1971년 11월 17일 백양사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입장료 : 소인700원+학생1300원+대인3200원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내장동 59-10
  • 주차장 : 경차2000원+승용차4000원+대형차6000원
  • <<내장산 국립공원내 주요 연락처>>
    * 내장산관리사무소 (T: 063-538-7875~6)
    * 내장산관리사무소 남부지소 (T:061-392-7288)
    * 내장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T:063-538-787)
    * 제1야영장(백양사지구) (T:061-392-7288)
    * 제2야영장(백양사지구)(T:061-392-7288)
    * 제3야영장(백양사지구)(T:061-392-7288)
    * 내장산관광안내소(T:063-530-7823)
  • 전화번호 : 063-538-7875
  • 관광지 담당자 : 내장산관리사무소

 

<고창군 편>

고창읍성

  •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倭侵)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성은 나주 진관(鎭管)의 입암산성(笠岩山城)과 연계되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극복을 위한 국방관련 문화재(사적 제145호, 1965년 4월 1일 지정)로 보존되고 있다. 이 성은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50,172평으로 동. 서. 북 문과 옹성(甕城) 3개소, 치성(稚城) 6개소, 성밖의 해자(垓子) 등 전략적 요충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등 22동의 관아(官衙)건물, 2지(池), 4천(泉)이 있었으나 전화(戰火)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 있다. 자연경관 또한 참으로 아름다워 하늘을 뒤덮는 노송과 빽빽하게 들어선 맹종죽(孟宗竹)은 운치를 더하여 준다. 지금까지 22동 중 14동(동헌(東軒), 객사(客舍), 풍화루, 공북루(拱北樓), 진서루(鎭西樓), 등양루, 성황사, 관청, 작청(作廳), 내아(內衙), 향청(鄕廳), 서청, 장청, 옥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官衙)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다. 또한 성밖의 외곽도로를 말끔히 정비하고 철쭉과 백일홍 등 꽃나무를 심어 꽃 길로 가꾸어 놓았다.
  • 입장료 : 소인400원+학생600원+대인1000원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
  • 주차장 : 경차1000원+승용차1500원+대형차3000원
  • 전화번호 : 063-560-2227
  • 관광지 담당자 : 고창군 문화관광과

판소리박물관

  • 고창 판소리박물관은 동리 신재효와 여류명창 진채선, 김소희등이 고창 출신의 명창들을 기념하고 동리국악당 및 판소리 전수관과 연계된 판소리 타운의 조성을 통한 판소리 성지로서의 위상과 지역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2001년 6월에 개관하였다. 고창읍성, 동리고택, 동리국악당과 이웃하여 위치한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형성과 발달과정의 설명판 판소리 관련 유물전시실, 따라 배우는 구전심수교실, 판소리의 이해를 돕는 영상자료실, 동리유품 전시실,소리굴에서의 자기 목소리 측정실등 다양하고 유익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도자기 및 한국화와 서예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휴게시설로는 화단등의 조경야외 공연장, 연못과 분수, 정자, 벤치등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게공간으로도 훌륭한 곳이다.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241-1
  • *규모 부지 5,525㎡, 연건평 1,216㎡(368평), 지하 1층 지상 2층
    *주요시설 전시실, 자료실, 연구실, 수장고, 영상실, 체험방, 명예의 전당, 유명인사관, 항온항습시설, 작품전시장, 화재 도난방지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주요사업 다수의 명창들을 기념하고, 판소리 성지로서 이미지를 창출
  • 전화번호 : 063-560-2761

미당시문학관

  • 고창이 낳은 한국 시단의 거목인 미당 서정주 선생의 작품과 생애를 엿볼 수 있는 미당시문학관은 전북 고창 선운리에 있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전시관 초입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깔끔한 건물이 돋보인다. 전시관은 미당의 육필원고, 미당의 작품집 그리고 미당의 소장품등 미당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고 그 외에 영상실, 세미나실, 휴게실 등으로 구성되있다.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231번지
  • 전화번호 : 063-564-1321
  • 관광지 담당자 : 재단법인 미당시문학관

선운사

  •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조계종의 전북도내 2대 본사로서 한국의 명승고찰로 유명하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하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774년 (정조 18년)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 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법명을 법운자로 한 진흥왕은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318년(충숙왕 5년)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고 1354년(공민왕 3년)에 재중수하였으며 1474년(조선 성종 5년)에 행호선사가 중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14년 (광해군 6년)에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선운사는 한때 89암자 24굴 189요사를 갖춘 대찰로 억불숭유 정책을 내세운 조선시대에도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보존된 대찰이었다. 선운사에는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 5점, 동백나무숲 등 천연기념물 3점, 기타 지방 문화재 등 총 19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 입장료 : 소인1200원+학생1700원+대인2600원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 주차장 : 경차2000원+승용차2000원+대형차3000원
  • *개장시간 하절기- 8시∼19시 동절기- 9시∼17시
  • 전화번호 : 063-561-1422
  • 관광지 담당자 : 선운사 관리사무소

고인돌군

  • 고창읍에서 4km 쯤 떨어진 도산리 지동마을 김영인씨댁 뒤 장독대 옆에 깔끔하게 정돈된 북방식(납작한 돌을 양쪽에 높이 세우고 그 위에 복석을 덮은 것) 고인돌 1기가 있고, 3km 정도 선운사 쪽으로 가면, 아산면 상갑리, 고창읍 죽림리, 매산리, 송암리 2Km의 지역에 펼쳐진 고인돌군이 나온다. 여기에는 길이5m, 폭4.5m, 높이4m의 150톤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을 위시로, 447기의 고인돌군이 각각 고유번호로 흰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다. 이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취락을 이루고 생활하여왔음을 엿보게한다. 2000년 11월 29일, 강화,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고, 그 전후로 상갑리, 죽림리 일대의 유적지가 잘 정돈되었다.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죽림리, 매산리, 송암리 일대
  • 전화번호 : 063-560-2577
  • 관광지 담당자 : 고인돌공원관리사업소

석정온천

  • 겨울철에도 개울물이 따뜻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고창읍 석정리 일대에서 1987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석정온천」은 프랑스「루르드온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게르마늄 온천」이다. 또한 석정 온천수는 암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특효약인「인터페론」을 체내에 유발시켜 자연 치유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 05:30 ~ 오후 20:30 까지 대인 4000원, 소인 3000원(평일 9시 이전 - 어른 3,000원 / 어린이 2,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 입장료 : 소인3000원+학생4000원+대인4000원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
  • *개장시간 오전 05:30 ~ 오후 20:30
  • 전화번호 : 063-564-4441
  • 관광지 담당자 : 석정온천 리조텔

신재효생가

  •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선생(1812-1884)의 고택(古宅)은 1979년 1월 23일부로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된 것으로 고창읍성(高敞邑城)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물을 멀리서 끌어들여 마루 밑을 통해서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꾸몄었으나 물길은 매몰되고 연못은 복원하였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종래 계통 없이 불려 오던 광대소리를 통일하여 춘향가(春香歌), 심청가(沈淸歌),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赤壁歌) 등 여섯 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독특한 창으로 판소리 사설(辭說)문학을 집대성하였으며 특히 춘향가, 박타령, 토끼타령, 심청전 등을 창극화하여 판소리 사상 뛰어난 공적을 이룩한 분이다.
  • 입장료 : 무료입장
  •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 전화번호 : 063-560-2227
  • 관광지 담당자 : 고창군청 문화체육과

 

[자료 출처]

  •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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